티스토리 뷰


4년 전 처음 읽었을 때보다 확실히 이해가 좀 더 된다.

아직도 아리송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지은에게도 상처를 위로해주려 다가온 사람들이 있었다.

최성식도, 이희재도 진심으로 그녀에게 다가온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지은과 자신 사이의 심연을 다 건너가지는 못했기 때문에, 서로에게 온전히 가 닿지 못했기 때문에

-최성식은 지은이 자신을 거절했다고 생각했고, 이희재는.. 사실 지은과 이희재가 결국 어떻게 된 건지 잘 모르겠다.

암튼 그래서 지은에게는 희재(카밀라)가 유일한 날개였던 게 아닐까.

그리고 그 유일한 존재를 타인에 의해 강제로 떠나보내게 되면서 모든 희망을 잃고 죽음을 택하지 않았을까.

책에는 희재(카밀라)의 아빠가 누구인지도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독자마다 판단하기에 따라 다를 것 같은데, 내 생각엔 최성식이 아닐까.

지은이 사랑한 사람은 이희재였지만,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최성식의 아이를 가지게 된 거 아닐까.

그래도 지은은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그 아이에게 희재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 아이를 통해 희망을 갖고, 그 아이를 아끼고 사랑했을 것 같다.

사실 난 아빠가 누구인지보다는 이희재와 지은의 이야기가 궁금하고, 그 이야기보다 지은과 희재(카밀라)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희재가 바닷속에서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엄마를 마주쳤을 때.

그리고 지은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딸을 생각할 때.

나는 이게 너무 울컥하고 찡하다. 사랑도 사랑이지만 ㅠㅜ






정상적인 사람들에게는 과거가 단일한 게 아니라 여러 개다. 가족이 기억하는 유년과 친구가 기억하는 유년과 자신이 기억하는 유년이 모두 다르리라. 그러므로 그들은 그중에서 가장 합당한 과거를 선택하면서 지금의 자신에 이르렀으리라.

진실은 매력적인 추녀의 얼굴 같은 것이라 끔찍한 게 분명한데도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욕망이 든다면, 그건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증거다.

모든 것은 두 번 진행된다. 처음에는 서로 고립된 점의 우연으로, 그 다음에는 그 우연들을 연결한 선의 이야기로. 우리는 점의 인생을 살고 난 뒤에 그걸 선의 인생으로 회상한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과거의 점들이 모두 드러나 있기 때문에 현재의 삶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앞으로 어떤 점들을 밟고 나가느냐에 따라서 그들의 인생은 지금보다 좋아질 수도 있고, 나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너 같은 경우는 완전히 다르다. 과거의 점들이 모두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네 인생은 몇 번이고 달라지리라. 인생의 행로가 달라진다는 말이 아니라 너라는 존재 자체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그렇게 이전에 보이지 않던 점들이 발견될 때마다 그 점들을 잇는 새로운 선들이 그어졌고, 네 인생은 그때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선이 달라질 때마다 너라는 존재도 바뀌었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카밀라라는 이름이 붙은 미국 소녀에서, 동백나무 아래에서 찍은 사진이 있었기 때문에 카밀라라는 이름을 얻게 된 입양아를 거쳐, 아이를 낳으면 '희재'라는 이름을 짓겠다던 열일곱 살 여고생의 딸까지. 새로운 점들은 너라는 존재를 그처럼 가변적으로 만들었다. 문제는 과거의 그 점들을 통제할 방법이 네게는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네가 강력하게 원하긴 했지만, 그 점들은 일방적으로 너의 정체성을 뒤바꿔놓았다. 너는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일에 조금씩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너라는 존재를 바꿔버려도 좋을 만큼 그 점들은 중요한가? 필연적인가? 진실은 과연 그토록 중요한가?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건 나의 일이었다. 너와 헤어진 뒤로 나는 단 하루도 너를 잊은 적이 없었다. 2005년을 기점으로 너는 나보다 더 나이가 많아졌지. 그럼에도 네가 영원히 내 딸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내 안에서 나보다 나이가 많은 네가 나왔다니. 그게 얼마나 대단한 경험인지 네게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있는 입술이 내게는 없네. 네 눈을 빤히 쳐다보고 싶지만, 너를 바라볼 눈동자가 내게는 없네. 너를 안고 싶으나, 두 팔이 없네. 두 팔이 없으니 포옹도 없고, 입술이 없으니 키스도 없고, 눈동자가 없으니 빛도 없네. 포옹도, 키스도, 빛도 없으니, 슬퍼라, 여긴 사랑이 없는 곳이네.

<천년여왕>에서 말한 종말의 시강닌 1999년을 넘기고 보니, 결코 인생이 쉽게 끝나는 건 아니었다. 그렇긴 해도 서른이 되면서 뜨겁고 환하던 낮의 인생은 끝이 난 듯한 기분은 들었다. 그다음에는 어둡고 서늘한, 말하자면 밤의 인생이 시작됐다. 낮과 밤은 이토록 다른데 왜 이 둘을 한데 묶어서 하루라고 말하는지. 마찬가지로 서른 이전과 서른 이후는 너무나 다른데도 우리는 그걸 하나의 인생이라고 부른다.

날마다 하나의 낮이 종말을 고한다. 밤은 그뒤에도 살아남은 사람들의 공간이다.

'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쿠다 히데오, 마돈나  (0) 2019.05.13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0) 2019.02.07
김연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0) 2018.12.17
정한아, 달의 바다  (0) 2018.12.08
김민철, 모든 요일의 기록  (0) 2017.02.26